난 처음에 그저 조금 더 커다란 우물 속으로 내려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저 커다란 우물도 다른 우물과 똑같은 거야.
커다란 우물의 안의 개구리가 되자.
일단 저 우물 안에만 들어가면
달콤한 것들을 받아 먹을 수 있겠지.
우물 속에서 오래 살던 개구리들의 텃세 정도만
잘 버티면 나도 오동통한 개구리가 될거라고만 생각했다.
커다란 우물 속에 들어가 한참 시간이 지나자
내가 가열되고 있는 냄비 속의 개구리인 듯 느껴졌다.
여기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는 눈을 희번득거리며
주변을 살피고 있는 오래된 개구리들과 같이
익어버리고 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시간이 지나 나도 냄비 속에서 몸이 슬슬 익어가고 있을 때,
이 우물은 그저 조금 더 커다란 우물이 아니라
거대한 벽으로 둘러 싸인 수렁과 진흙창의 성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들어오는 문도 작지만, 나갈 수 있는 문도 작디 작은
벽이 높고 땅은 깊은 수렁의 성.
드높은 왕좌를 떠받드는 수많은 사람들이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 굳어지고 고정되어
매일, 매 시간 거대한 성을 중심으로 삶을 반복하는
소사이어티 그리고 커뮤니티.
다양한 크기와 종류 별로 '급'이 나눠져서
멋지고 맛있는 음식을 풍족하게 얻어먹거나 혹은
그보다 못한 것들을 받아먹는 챗바퀴 속 개구리, 다람쥐로 살지만
일평생 거기서 태어나 자라왔고 또 거기가 세상의 전부이기에
대탈출, 출애굽을 시도할 수도 없는 안타까운 군상들의 모임이었다.
간혹 봉건영주가 되어 영토 하나를 하사받고 떠나는 이들이 있으나
그들 역시 평생 밧줄에 매여 드높은 왕좌를 향해 수시로 엎드려 절하는
진흙인형처럼 고정된 인생들일 뿐이었다.
이제 나는 입구라고 적힌 작은 문으로 들어왔다가
그보다 더 작은 출구라고 적힌 문을 향해 힘겹게 나아간다.
희번득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서로서로 수군대는
개구리, 다람쥐, 봉건영주들이 나의 뒤에 서있다.
잘 있거라. 개구리들아.
잘 있어라. 다람쥐들아.
잘 지내라. 봉건영주들이여.
언젠가 참 자유를 얻었을 때
너무나도 큰 허무감으로 허탈하지 않기를.
내 모쪼록 그대들을 위해 기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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